아들아! 나는 너를 느끼고 있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06-04-21 09:41

조회수 5,597

겹겹이 둘러 쌓인 담장 안에 13년간 갇혀 있는 앤드류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우리 두 사람은 유리로 가로 막힌 이 편과 저 편으로 갈라 앉았다.
19살에 감옥에 들어가 32살이 된 앤드류는
모진 세월이 그대로 멈춘 듯 소년의 맑은 눈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누가 저 눈빛을 보고 감히 그가 살인수라고 추측 할 수 있을까?

건장한 몸과 준수하고 반듯한 얼굴
맑고 따뜻한 눈빛을 가진 앤드류는 비장한 각오를 한 목소리로
"사모님! 저에게 무엇이든 질문하세요."라고 말했다.
"앤드류야!  나는 너에게 질문하러 온 것이 아니야
나는 너를 고스란히 느끼러 왔어.
너의 사랑, 너의 미움, 너의 절망과 분노, 그리움과 외로움...너의 모든 것을..."
그렇게 말하며 나는 내 손바닥을 유리창에 대었다.
그 순간 앤드류의 가슴에 가득 담긴 눈물이 내 눈에서 뜨겁게 쏟아져 내렸다.
울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앤드류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14일 전 예배 시간에 한 여인이 나를 찾아 왔다.
그 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대뜸
"사모님! 형무소에 있는 죄수를 만나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조금의 주저함없이 "예!"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녀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는냐고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주님께서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라고 하셨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사모님!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예요.  
그 사람은 이 곳 한국 형무소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미국 시카고에 수감되어 있어요.
그를 면회하려면 그가 수감되어 있는 시카고 Pontiag 형무소로부터
면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사모님이 외국인 이여서 쉽지 않을거예요.
그리고 시카고까지 가는 비행기 비용도 만만치 않고
면회 날짜에 맞추려면 미국에 며칠 계셔야 할텐데
그 경비의 부담도 크시지 않겠어요?"
나의 대답이 너무 쉽자 부탁을 하러 온 그 녀가 오히려
이 만남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내가 그를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를 만나게 하실거예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 녀는 하늘을 향하여 크게 소리쳤다
"주님! 드디어 작가를 찾았어요! "

발갛게 상기된 그 녀의 얼굴에서 감사의 눈물이 흘렀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며 그 녀는 나를 찾아 온 이유를 말했다.

내가 만나야 하는 복역수의 이름은 앤드류 서(한국명 서 승모)였다.
19살 나이에 누나의 남자 친구를 총살한 살인자로서
실형 80년을 언도 받은 종신형의 복역수이다.

나를 찾아 온 그 녀는 시카고에 살고 있는 화가인데
그레이스 교회의 선한 사마리아인 선교회에서 형무소 봉사를 나갔다가
앤드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선교회에서는 형무소에 들어간 지 1년만에 주님을 뜨겁게 영접하고
모범수로 살고 있는 앤드류를 구명하는 운동을 10년째 하고 있다.
앤드류의 재판을 다시 해달라는 탄원 서명을 받는 일인데
사회인들은 물론 교회까지 냉담하여 현재 8,000명 정도 밖에 받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합심하여 기도하던 중
앤드류에 대해서 책으로 써서 알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앤드류 사건은 시카고를 강타한 사건이여서
유명한 작가들이 자원하여 모여 들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는 돈을 위하여
어떤 이는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일하려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 선교회는 작가를 찾기 위해 더욱 애쓰고 힘쓰며 기도 하였는데
후배로 부터 걸려 온 전화에서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내 책을 소개 받은 것이다.
그 시간으로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여 단숨에 읽고는
무조건 한국으로 나를 데리러 나온 것이었다.

그 날부터 앤드류를 만나는 일로 분주 하였다.
앤드류가 수감되어 있는 형무소로 부터 면회허가를 받기 위한 모든 서류를 준비하였다.

앤드류의 이름을 내 가슴에 받은 날로 부터
나는 그를 위해 매일 기도하였다.

앤드류를 만나면  첫 번 질문을 무엇을 할까
너는 왜 그 사람을 죽였냐고 물을까?
형무소에 들어간 첫 날의 비통함을 물을까?
나는 앤드류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왜, 쓸 것인가?

앤드류의 이름은 삼키다가 목에 걸린 알약처럼
하루 종일 내 목으로 쓴 물이 되어 녹아 내렸다.

Pontiag 형무소는 살인수들만 수감되어 있는 곳이여서
그 경계가 살벌하고 엄했다.
내가 외국인이여서 면회를 허락  할 수 없었으나
사회적으로 선한 봉사를 하는 것을 인정하여
이번 한 번만 면회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앤드류와의 단 한 번의 만남을 통하여 앤드류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절박한 만남 앞에 서려니 머리속에서 끊임없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기실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리고 주님께 내 입술을 맡겼다.

몇겹으로 닫혀 있는 철창문을 지나고
몸과 옷을 수 없이 검시 당한 후에
앤드류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를 처음 보는 순간
오늘 처음 보는 낯선 청년 앤드류가 아니라
19살에 이 철창안에 갇힌 내 아들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내 사랑하는  아들의 모진 외로움과 견딜 수 없는 쓰라린 고통이
처절하게 어미의 가슴에 느껴져왔다.

아들아! 나는 너를 느끼고 있다.
목이 메이고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뭉클 올라왔다.  

유리창에 댄 내 손바닥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앤드류의 손이 유리 저 편에서 내 손에 포개졌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의 첫 만남을 아무 말도 하지 않게 하고
오랫동안 손바닥을 마주 대게 하여
눈물로 가슴에 흐르는 진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