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이름의 김밥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06-11-07 21:54
조회수 2,877
자활을 위한 일터로 오픈된 <시냇가 김밥 집>은 두 달이 지난 지금 자원봉사자 들의 기쁘고 보람 있는 노력으로 잘 운영되어 나가고 있다. 시냇가 김밥 집은 김밥 전문점으로 시작되었는데 여러 가지 메뉴를 추가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깨끗하고 음식이 맛있으며 값이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며 식당을 통해 자활 훈련을 받은 노숙인들에게 노동력 창출의 좋은 터전이 될 것임을 입증해 주었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보도된 내용이다.
☎ (02) 365-9106 시냇가김밥집
<‘희망’이라는 이름의 김밥> “여기 노숙자 샤워하는 곳 아니오?” “옆 건물로 옮겼고요, 이곳은 이제 김밥집입니다.” 김유인(64)씨는 신바람이 났다. “반년 전만 해도 저 역시 서울 역 을 떠돌던 노숙자였습니다. 끼니 해결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죠. 그러던 제가 작으나마 가게를 갖게 되다니….” 김씨는 지난 1일부터 서울역 ‘시냇가 김밥’의 어엿한 주인이 됐다.
김씨는 경기도 평택에서 콜라텍을 운영하던‘사장’이었다. 그런데 올 2월, 6년간 운영하던 업소가 망했다. 2년 동안 적자에 시달리다 집주인으로부터“나가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것이다. 살던 집의 전세 보증금에 가재도구까지 팔아 그간 진 빚을 갚고 나니 주머니에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젊은 시절 아내와 이혼하면서 아이들까지 딸려 보낸 그가 갈 곳은 서울 역 뿐이었다. 처음 사흘 밤낮은 체면 때문에 벤치에 눕지도 않고 앉아버텼다.
“ 아홉 끼를 굶으니 창피고 뭐고 다 사라지더군요. 자는 걸인을 깨워‘밥 먹는 데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인생 끝 이구나’ 라고 되뇌며 나흘 만에 입에 꾸역꾸역 넣은 미지근한 김치국밥이 어찌나 맛있던지….”한 달간의 노숙생활을 겪으면서 그는 조금씩 제정신을 차려갔다. 노숙자센터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나만 이런 것은 아니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한때 미국에서 접시닦이를 하며 꿋꿋이 살았던 젊었을 때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7평 남짓한 규모의 <소중한사람들>이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했던 노숙자 샤워 시설 ‘시냇가 가 지난 8월 넓은 장소로 이전해 빈다고 했을 때 그는“그 자리에 가게를 하나 꾸려 보고 싶다”고 노숙자 자활센터를 운영하는 김수철 목사에게 제안했다. 보증금 없이 매달 월세 70만원을 내는 조건이었다.
‘소중한 사람들 자활 센터’ 에서 함께 생활하던 노숙자 ‘동기’ 유영길(37)씨도 합류 의사를 밝혔다. 그는 올해 초 고향인 전남 장성서 무작정 서울 행 기차로 올라온 뒤 곧바로 노숙자가 됐다. 작년 7월 교통사고로 갑자기 부모님을 한꺼번에 저 세상으로 보낸 고통이 사라지기도 전인 12월, 삶의 전부를 걸었던 하우스 재배시설이 폭설에 내려앉은 직후 결행한 선택이었다. 영등포역서 술과 벗하며 노숙자생활을 하던 그가 자활센터로 들어갈 작정을 한 것은 살을 에는 추위 때문이었다.“ 겨울이 유난히 춥지 않았다면 그 생활을 더 했을지도 모르죠.” 센터에서 생활한 지 5개월, 김밥집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유씨는 또 실패할까 두려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결심을 내렸다. 이 둘은 요즘 새로 찾은 아침이 마냥 즐겁다. 요리와 가게 운영은 유씨가, 배달과 홍보는 김씨가 맡고 있다.‘시냇가 김밥’ 이라는 간판 아래에는‘진짜 맛있는 김밥 1000원’이라는 안내와 도시락 샘플도 내걸었다. 개장 첫날 김밥 7줄에 불과했던 매상은 김씨의 적극적인 홍보 덕에 최근 하루 약 40줄씩 팔리고 있다. 유씨의 가장 큰 소망은 매주 서 너 번씩 삼겹살에 한잔 하던 고향 친구들과 다시 모여 그동안의 회포를 풀어놓는 것이다.“ 그러기엔 아직 삶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커서…”라고 말하며 그의 눈이 벌게졌다.“ 솔직히 아직 고향에 다시 내려갈 자신이 없어요. 그렇지만 이번 추석에는 고향집에 모여 저를 기다릴 형제들에게 전화라도 할 생각입니다. 무작정 집 떠나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막내가 이제 희망의 불씨를 찾았다고 말이죠.” [조선일보 김신영기자]
☎ (02) 365-9106 시냇가김밥집
<‘희망’이라는 이름의 김밥> “여기 노숙자 샤워하는 곳 아니오?” “옆 건물로 옮겼고요, 이곳은 이제 김밥집입니다.” 김유인(64)씨는 신바람이 났다. “반년 전만 해도 저 역시 서울 역 을 떠돌던 노숙자였습니다. 끼니 해결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죠. 그러던 제가 작으나마 가게를 갖게 되다니….” 김씨는 지난 1일부터 서울역 ‘시냇가 김밥’의 어엿한 주인이 됐다.
김씨는 경기도 평택에서 콜라텍을 운영하던‘사장’이었다. 그런데 올 2월, 6년간 운영하던 업소가 망했다. 2년 동안 적자에 시달리다 집주인으로부터“나가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것이다. 살던 집의 전세 보증금에 가재도구까지 팔아 그간 진 빚을 갚고 나니 주머니에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젊은 시절 아내와 이혼하면서 아이들까지 딸려 보낸 그가 갈 곳은 서울 역 뿐이었다. 처음 사흘 밤낮은 체면 때문에 벤치에 눕지도 않고 앉아버텼다.
“ 아홉 끼를 굶으니 창피고 뭐고 다 사라지더군요. 자는 걸인을 깨워‘밥 먹는 데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인생 끝 이구나’ 라고 되뇌며 나흘 만에 입에 꾸역꾸역 넣은 미지근한 김치국밥이 어찌나 맛있던지….”한 달간의 노숙생활을 겪으면서 그는 조금씩 제정신을 차려갔다. 노숙자센터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나만 이런 것은 아니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한때 미국에서 접시닦이를 하며 꿋꿋이 살았던 젊었을 때의 기억도 되살아났다. 7평 남짓한 규모의 <소중한사람들>이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운영했던 노숙자 샤워 시설 ‘시냇가 가 지난 8월 넓은 장소로 이전해 빈다고 했을 때 그는“그 자리에 가게를 하나 꾸려 보고 싶다”고 노숙자 자활센터를 운영하는 김수철 목사에게 제안했다. 보증금 없이 매달 월세 70만원을 내는 조건이었다.
‘소중한 사람들 자활 센터’ 에서 함께 생활하던 노숙자 ‘동기’ 유영길(37)씨도 합류 의사를 밝혔다. 그는 올해 초 고향인 전남 장성서 무작정 서울 행 기차로 올라온 뒤 곧바로 노숙자가 됐다. 작년 7월 교통사고로 갑자기 부모님을 한꺼번에 저 세상으로 보낸 고통이 사라지기도 전인 12월, 삶의 전부를 걸었던 하우스 재배시설이 폭설에 내려앉은 직후 결행한 선택이었다. 영등포역서 술과 벗하며 노숙자생활을 하던 그가 자활센터로 들어갈 작정을 한 것은 살을 에는 추위 때문이었다.“ 겨울이 유난히 춥지 않았다면 그 생활을 더 했을지도 모르죠.” 센터에서 생활한 지 5개월, 김밥집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유씨는 또 실패할까 두려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결심을 내렸다. 이 둘은 요즘 새로 찾은 아침이 마냥 즐겁다. 요리와 가게 운영은 유씨가, 배달과 홍보는 김씨가 맡고 있다.‘시냇가 김밥’ 이라는 간판 아래에는‘진짜 맛있는 김밥 1000원’이라는 안내와 도시락 샘플도 내걸었다. 개장 첫날 김밥 7줄에 불과했던 매상은 김씨의 적극적인 홍보 덕에 최근 하루 약 40줄씩 팔리고 있다. 유씨의 가장 큰 소망은 매주 서 너 번씩 삼겹살에 한잔 하던 고향 친구들과 다시 모여 그동안의 회포를 풀어놓는 것이다.“ 그러기엔 아직 삶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커서…”라고 말하며 그의 눈이 벌게졌다.“ 솔직히 아직 고향에 다시 내려갈 자신이 없어요. 그렇지만 이번 추석에는 고향집에 모여 저를 기다릴 형제들에게 전화라도 할 생각입니다. 무작정 집 떠나 길거리에서 방황하던 막내가 이제 희망의 불씨를 찾았다고 말이죠.” [조선일보 김신영기자]